개인적으로 넷플릭스 '수리남'은 상당히 기다렸던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주연인 황정민, 하정우라는 어마 무시한 조합이 기대되었죠. 또한 윤종빈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도 기대에 한 몫했습니다.
목차
윤종빈 감독
넷플릭스 '수리남'은 선명하게 윤종빈 감독의 작품답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드라마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드라마는 감독의 전작들을 다 합쳐놓은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우선 언더커버 국가기관의 부패라는 지적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 '군도' 그리고 조금 더 넓게 보면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와 맞닿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수리남에 녹아 있는 첩보전이라는 색채는 영화 '공작'을 떠올리게 했죠. 작중에서 강인구가 운영하던 단란주점을 묘사하던 몇몇은 영화 '비스티 보이즈'의 장면들이 스쳐가기도 했습니다.
영화 내적으로도 윤종빈 감독의 스타일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세상에 대한 날 선 비판의식, 인간 혹은 인간사에 대한 창작자의 깊은 고찰 같은 것이 작품에 많이 배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굴레
'수리남'은 범죄라는 장르적인 외피를 제거하면 다각도로 접근해볼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작품입니다. 그중 하나로 영원히 반복, 계승되는 삶의 굴레라는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것은 아버지의 삶이라는 타이틀로 설명이 가능한데요.
'수리남'의 초반은 강인구의 과거를 보여주는 플래시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구는 평생 일만 하다가 자식들과 외식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비명횡사한 아버지를 목도한 뒤에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후에 역시 아버지처럼 가족을 일구고 삶이 조금 괜찮아지죠. 그럼에도 그가 큰돈을 벌기 위해 인생을 거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보기 위함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수리남'을 강인구 중심으로 놓고 본다면, 자신의 아버지가 겪었던 삶의 굴레는 반복하지 않고 굴레에서 이탈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다음 세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강인구도 결국 아버지의 삶을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홍어
인구가 작중에서 남미의 작은 국가인 수리남으로 향한 이유는 홍어를 유통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홍어는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술안주였죠. 즉 아버지의 삶으로부터 가장 멀리 달아나려는 인물이 결국 아버지에 관한 소재로 삶을 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반복되는 삶에 대한 비유로도 볼 수 있습니다.
베트남전
또한 강인구의 아버지는 베트남 전에 참전한 인물입니다. 강인구 역시 수리남에서 사실 범죄 관련 전쟁에 참전한 꼴이죠. 민간인이었던 인물이 총을 손에 쥐게 되고 심지어는 누군가를 향해 발포를 하게 되니, 이 역시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려던 아들이 결국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묘사로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수리남' 속 이러한 굴레의 메커니즘은 교회라는 소재를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작중에서 다소 농담처럼 소개되고 있지만 인구와 결혼할 수 있게 된 것은 교회를 함께 다녀야 한다는 아내의 조건을 그가 수락했기 때문입니다. 인구의 아내는 상당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표현되고 있죠.
이러한 관점으로 '아내=교회'라는 도식화를 해보면, 인구가 아내를 두고 수리남으로 왔다는 사실은 교회와도 멀리 떨어지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수리남에서 지독한 사건에 얽히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교회를 나가면서부터 이죠. 즉, 인구는 한국의 교회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지만 결국 도착한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역시 강인구에게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이라는 인상이 부여되고 있는 것이죠.
수리남이라는 지역의 의미
앞서 말한 관점으로 보았을 때, 작중 배경이 되는 수리남이라는 지역도 탁월해 보입니다. 물론 이 드라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고증에 의거해 선택된 지역이겠지만, 지정학적 관점에서도 흥미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리남은 남미에 있는 국가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대륙입니다.
거듭 이야기하면 '수리남'은 아무리 달아나려 해도 결국 아버지의 삶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다음 세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강인구는 아버지의 삶과 유리되기 위해서 아버지의 교향에서 인간의 능력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으로 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인구는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죠.
저에게 드라마 '수리남'은 소위 금수저처럼 위에서 내려오는 대물림이 없는 이상 아버지의 삶은 사실상 세대를 거쳐 내려가도 똑같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처럼 보였습니다.
강인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수리남'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은 강인구에게 가장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해서 그의 행동에 대해 마치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윤종빈 감독은 강인구라는 캐릭터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윤종빈 감독은 작중에서 강인구를 3가지 중독에 대한 이야기로 강인구를 비판합니다.
작중에서 이야기하는 3가지 중독 중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종교와 마약 중독일 것입니다. 황정민이 연기한 '전 목사'는 이 2가지를 가지고 사람들을 흔드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강인구와 전 목사
개인적으로 '수리남'을 시청하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돈의 중독'이었습니다. 강인구는 처음 창호로부터 잠복수사를 의뢰받았을 때 사례비에 대한 협상부터 시작합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내가 할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라는 질문부터 하겠죠. 그런데 인구는 자신의 수당을 어떤 식으로 받을지까지 세세하게 논의합니다.
강인구와 전 목사, 이 두 인물은 수리남까지 오게 된 상황도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강인구가 자신의 단란주점에 온 비리 경찰을 업어치기 한 뒤에 수리남으로 건너오게 되었다면, 전 목사 역시 국정원 고위 관료로 보이는 비리 공무원을 살해한 뒤에 수리남으로 오게 되죠.
게다가 강인구가 사건에 깊게 연루되면 연루될수록 점점 대범해지고 사기꾼적인 면모가 진해지는데, 이를 보면서 저는 강인구가 전 목사처 럼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구공의 의미
드라마 '수리남'에서 야구공이란 소재는 강인구와 전 목사의 관계를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작중에서 전 목사는 강인구에게 박찬호 사인이 되어 있는 야구공을 선물하죠. 드라마는 그것이 진품인지 가품인지 답을 주지 않고 오리무중 하게 하는 방식으로 종료됩니다.
우선 전 못 사는 야구에 광적으로 열광하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즉, 야구와 관련된 것만큼은 진심일 것이며 야구공도 당연히 진품일 거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 목사가 강인구에게 야구공을 준 것은 아마도 일종의 동질감의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 목사에게 이 세상에서 진짜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돈일 것입니다. 즉, 시종일관 돈을 우상화하는 강인구는 전 목사의 입장에서 진품인 것이죠.
말하자면 전 목사가 야구공을 강인구에게 주는 행위는 진짜에게 진짜를 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후에 그는 인구에게 은밀한 장소까지 보여준 뒤 총책을 제안하기도 하죠. 아마도 그러한 제한의 기저에는 자신과 같은 돈 중독자에게 보이는 신뢰감 같은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두 인물의 차이점
강인구는 조건만 부합된다면 충분히 전 목사처럼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드라마 극후 반부, 강인구는 단란주점 2개를 받지 않겠다는 선택을 합니다. 돈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해방된 것이죠.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인구에게 가족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지점은 강인구와 전 목사 간 가장 큰 차이점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강인구는 한국의 아내와 두 자녀가 있기에 끈을 부여잡고 불의에 영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인구가 전 목사의 주택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며 일종의 휴머니즘을 드러내는 것도 아마 그에게 가족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뛰어든 삶의 굴레가 어떻게 보면 강인구의 정신을 끝까지 온전히 지켜주는 동력이 된 것이죠.
아쉬웠던 점
넷플릭스 '수리남'을 보면서 딱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습니다. 바로 '다소 공감이 되지 않는 강인구의 선택들'이었는데요. 강인구는 물론 바람직한 시민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무리 돈 때문이라고 해도 타지에서 거대한 악의 조직에 잠복 요원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쉽게 용인하는 것이 제게 100%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작중에서 가족의 부양, 친구의 죽음, 자신의 홍어 사업체에 대한 복수라는 당위를 부여하고 있고, 무엇보다 돈에 대한 욕망이라는 극의 주제의식과 강인구의 행동이 맞닿는 부분이 있기에 불편할 정도로 큰 이질감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넷플릭스 '수리남'은 '우리는 누구나 강인구처럼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돈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강인구가 하는 행동의 면면을 보면 '정말 누구나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은 강인구라는 특수한 1명의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일반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반문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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