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한국 영화 BIG 4 중에서 '비상선언'은 가장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했습니다. 영화 '관상'을 연출했던 한재림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과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등 하나의 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주목받았던 '비상선언'이었죠.
비상선언, 난잡한 스토리 라인
영화 '비상선언'에 대한 저의 감상평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과유불급'이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선 비상선언이라는 제목에 맞게 항공재난을 그려내는 부분에서 긴장감이 잘 유지가 되었습니다.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는 과정과 범행을 발견해내는 부분에서는 긴장감 있게 잘 그려냈죠. 그래서 이야기만 두고 본다면 긴장감 있게 느껴지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항공기 내부와 한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의 2개의 트랙으로 이어지는 상황들이 상당히 긴장감 있게 느껴졌죠.
그래서 스토리들만 두고 본다면 꽤나 긴장감이 느껴지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항공재난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 영화가 진행이 되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비상선언'은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최근에 개봉했던 '한산 : 용의 출현'이 호평을 받은 이유는 해전에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즉 비상선언 또한 감정적인 이야기들을 뒤로하고 항공 재난에 집중한 모습이었다면 항공재난을 잘 그려낸 영화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분명 '비상선언'은 항공재난을 그려내는 부분 자체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설정 자체는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가 보여줄 이야기들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만약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 놓고 싶었다면 항공기 내부 사람들의 대처와 관련된 부분은 상당히 빠른 전개로 이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비상선언, 가장 큰 단점은?
오히려 넷플릭스 시리즈로 이 인물들의 스토리가 다 풀어진다면 감상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다 잡아내려고 하니 조금 벅찬 감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주인공 급의 인물들의 이야기도 풀어내기 바쁜 데 이름도 모를 조연급 배우들의 이야기도 보여주려고 했죠. 극 중 등장인물들이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은데, 저는 난잡하게 느껴졌습니다.
'비상선언'의 가장 중요한 단점 중 하나는 영화가 끝났음에도 통쾌함이라던지 깔끔한 구석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극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장면 중 하나가 하이라이트에서 이들이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 짓는가 했던 것인데 이 장면을 생략하고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의 장면들을 보여주었죠. 개인적으로 정말 실망스러웠던 부분입니다.
비상선언, 공감되지 않는 캐릭터들
영화 '비상선언'에서 등장하는 등장인물 중, 특히 항공재난을 해결해야 하는 외부 사람들의 모습도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작중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적 결정이 아닌 감정이 앞서는 행동을 보인다는 점에서 좀 답답하게 느껴졌죠. 적어도 1~2명 정도의 인물들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하는 인물이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항공기 내부의 사람들끼리 벌어지는 일들은 영화 '부산행'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이밖에 영화 속 다른 이야기들도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장면들이 꽤나 많았죠. 적어도 '비상선언'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개성 같은 부분이 조금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비상선언, 감정이 앞서는 전개
결과적으로 영화 '비상선언'은 등장인물들이 많아지고 그들 하나하나의 스토리를 다 그려내려다 보니 오히려 영화의 시선이 분산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최근 호평받은 한국영화들은 대체로 심플함을 가지고 있다는 특징이 있는데 인물들의 여러 사연들을 통해서 감정적인 이야기를 전개하기보다는 하나의 사건을 속도감 있게 전개함으로써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동안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이죠. 비상선언 또한 영화 초반부까지는 항공 재난이라는 장르적 특성에 맞는 긴장감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 될수록 극 중 인물들이 감정이 앞서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특히나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항공기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내린 결정은 정말 경악스러웠죠. 재난영화에서 재난을 뚫고 서라도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는 계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이 등의 감정적인 관계 설정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계기를 만들기 위한 장치로 작용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영화의 주된 코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 영화 시장 전체적으로 신파적이고 감정적인 연출을 꺼려하는 관객들이 많아지는 와중에 한국 영화들의 패턴도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는 것이 부담이 없는 상황이었으면 모르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비상선언'과 같이 감정이 앞서는 영화는 보기 꺼려지죠. 아무리 '비상선언'이 2년 전에 이미 만들어진 영화라고는 하지만 그때 개봉했더라도 성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비상선언, 절망적인 고증
영화 '비상선언'은 비행기 관련 종사자분들이나 파일럿과 관련된 일을 하시던 분들이 상당히 답답해하실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커뮤니티 등지에서 '비상선언'의 항공기 관련 고증에 대해서 많이 지적하고 있죠.
대표적으로 환기, 개개인이 산소 마스크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 기장은 절대 기장실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 등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대두되는 상황입니다. 음식으로 인해 파일럿의 몸상태가 이상이 생길 것을 우려해서 기장, 부기장은 다른 메뉴로 식사를 한다는 것을 대체로 많이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극 중에서는 기장, 부기장이 같은 식사를 하려고 한다는 것 자체도 고증이 덜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불어 민항기에 사격을 하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되고 '비상선언'이지만 그것이 유효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왜 제목으로 지어놨을까도 의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항공재난에 집중해서 이를 극복하는 기술적인 면들을 등장시켰으면 좋지 않았나하는 생각입니다. 결국 '비상선언'은 항공재난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항공재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스토리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후반부의 감정적이고 신파적인 연출도 제 개인적으로는 별로였습니다.
비상선언 결론
영화 '비상선언'은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했습니다. 감정적인 이야기들을 좀 덜어내고 스토리의 전개 속도를 올려서 항공재난에 초점을 맞춰 깔끔하게 끝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배우 캐스팅에 이렇게 공을 들였는데 그들을 모두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오히려 인원이 많다 보니, 누구 1명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어려운 그런 영화였습니다. 오히려 과한 캐스팅이 독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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