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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송해의 마지막 유언

by tkaehrhsl 2022.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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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는 일요일 낮만 되면 경쾌한 음악에 맞춰 실로폰 소리가 울리면서 정감 어린 특유의 목소리로 '전국~ 노래자랑!'을 우렁차게 외치곤 했죠. 일요일의 남자라고 불리던 송해가 향년 95세의 나이로 우리들 곁은 떠나고 말았습니다.

 

송해는 그간 건강한 모습을 보이고 안타깝게도 올해 들어 유난히 건강문제로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했고 그렇다 보니 최근에는 33년간 진행하며 최고령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전국 노래자랑 하차를 두고 고민해 오기도 했죠. 한국 예능의 살아있는 역사였던 송해의 일생과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듣지 못한 유언과 더불어 오랜 기간 마음으로 정했던 전국 노래자랑의 후임 이상벽과 지키지 못한 슬픈 약속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송해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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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젊은 시절, 좌측부터 20대, 40대, 50대 시절

 

송해는 1927년 일제강점기 시절 한반도 이북 황해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끼 많은 개구쟁이로 동네에서 꽤 유명했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북한 지역의 유일한 음악대학인 황해도 해주 예술 전문학교에 입학해 성악을 공부하기도 했죠. 그렇다 보니 당시 순회 악단에서 가수를 하기도 했으며, 또한 악단 공연의 특성상 진행을 하면서 입담을 살려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도 하다 보니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MC 경험을 쌓게 되었다고 하죠.

 

그러나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학업과 가수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고, 전쟁 초기에는 고향에 머물다가 당시 구월산 일대에서 활동했던 공산당 유격대 모병을 피하기 위해 인근 마을에 숨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해야만 했죠. 그러다 1.4 후퇴가 벌어지던 때 여느 때처럼 다시 나가려고 하자 송해의 어머니가 "얘야, 이번엔 특히 조심해라"라고 했고 송해는 "예, 걱정 마세요. 어머니"라며 짧은 당부를 나누고 어머니와 여동생을 두고 나왔는데 결국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돼버렸죠.

 

송해송해송해
송해

 

그렇게 어머니와 생이별 후 인민군을 피해 피난을 떠난 뒤 미군함을 타고 부산까지 내려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송해는 배에서 망망대해를 내려다보면 자신의 본명인 '복희'를 '해'로 바꿔 송해가 되기로 결심하게 되죠. 이후 송해는 부산항에 내리자마자 사실 갈 곳도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앞에 사람만 따라다니다가 우연히 군에 입대하게 되었고 당시 군대 선임이 혼자였던 송해에게 여동생을 소개해주었는데 그녀가 바로 부인 석옥이 여사였습니다. 

 

 

아무튼 군 제대 이후에는 과거 본인이 했던 특기를 살려 본격적으로 연예활동을 시작했고, 특히 당시 라디오에서 능수능란한 화술과 진행 능력 덕분에 송해가 맡던 교통방송은 운전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마이크만 열면 "오늘도 안전 운전합시다."라고 말하며 끝내곤 했죠.

 

 

송해 아들

 

송해
송해

 

한창 교통방송을 열심히 할 무렵 정말 안타깝게도 평소 오토바이를 좋아하던 아버지 몰래 엄마를 졸라 오토바이를 산 뒤 한남대교를 지나던 중 빗길에 넘어져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당시 송해의 아들이 남긴 마지막 말은 "아버지.. 살려줘."였고 이내 세상을 떠나버리자 이때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여긴 송해는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하게 되고, 낭떠러지에 몸을 던졌지만 바위틈에 있는 소나무에 옷이 걸려 가까스로 다시 살아나기도 했죠.

 

송해
송해

 

훗날 송해가 이때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당시 나는 우리 아들에게 너무나도 큰 죄인이자 자격을 잃은 아버지로서 후회가 크며, 아들의 사고 이후에는 지금도 한남대교를 건너지 못한다.

가족의 행복이란 것이 무엇이겠나.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이 잘 되었으면 그런 화는 면하지 않았을까 해서 나는 아버지로서는 정말 못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면서 자식을 밀어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 여러분들 만큼은 가족끼리 많이 대화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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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전국 노래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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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아무튼 이처럼 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당시 송해는 속으로 '내가 누구한테 안전운전을 하자고 얘기하는 게 참 가식적'이라 생각해 바로 교통방송을 그만두고, 한동안은 웃음을 잃은 채 집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송해에게 방송국으로부터 방송 하나 하자는 제안이 오게 되는데 그게 바로 '전국 노래자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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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그렇게 아들을 먼저 보낸 충격을 잊기 위해 참여했던 '전국 노래자랑'은 이후 무려 33년 동안이나 진행하며 송해는 단일 프로그램 최장 진행자로 기록되었죠. 또한 말 그대로 '전국 노래자랑'이다 보니 잊지 못할 괴짜 참가자들도 꼭 출연하기 마련인데 이때 송해가 보여준 대처 능력은 그야말로 관록과 대인배의 면모를 볼 수 있었죠.

 

송해의 후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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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그렇게 무수한 출연자들과 사연들로 가득했던 '전국 노래자랑'을 33년간 지켜온 송해는 혹시나 후임을 정한다면, 누구에게 맡기고 싶냐는 질문에 그가 고백하기로는 "내 후배 되는 사람, 즉 희극을 한다는 사람은 전부 줄에 서 있다. 하지만 내 마음속으로는 이상벽"이라고 밝힙니다. 

 

그러나 이때만 하더라도 송해 본인이 전국 노래자랑을 30년을 더할 테니 이상벽은 나이가 90이 넘어서 해야 된다며 장난스럽게 말을 전하기도 했죠.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작년부터 건강에 조금씩 문제가 생겨 전국 노래자랑을 잠시 쉬는 동안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송해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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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송해가 생전 마지막으로 고백하여 유언이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살면서 여러 아픈 이별을 경험해보았지만, 먼저 떠난 아들만 생각하면 정말 당장이라도 뛰어나가고 싶다. 그때 내가 교통방송 라디오를 할 때로 늘 방송 첫 이사로 '안녕하셨습니까. 오늘도 무사고 운전합시다'라며 매일 시작했는데 정작 아들이 그런 일을 당하자 너무 힘들었다.

심지어 나는 당시 아들이 엄마를 졸라서 오토바이를 샀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원래 자식을 둔 부모라면 자식이 하고자 하는 바,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알아야 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게 내 책임이다 싶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이런 고비들을 넘고 살아갈 수 있었던 건 늘 내 곁에 있어주었던 관중과 대중들이다. 난 그분들을 금쪽같이 생각한다. 그래서 전국 노래자랑은 내 평생의 교과서이다"

 

마무리

이상 송해의 마지막 유언, 일생 등을 알아보았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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